죽음이 무서웠다. 이라는 영화를 본 뒤, 더 무서운 게 생겼다. ‘죽을 이유만 찾는 삶’이다. 주인공인 할머니는 93세에 자살 시도를 했다. 모아둔 안정제를 한 번에 삼킨 것. 손녀는 모든 것을 내던지고 할머니 집으로 향한다.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할머니와의 생활을 손녀는 기록한다. 그 덕에 인생 영화를 만났다.
자꾸 일시 정지 버튼을 누른 건, 주인공 할머니가 우리 할머니로 겹쳐 보였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소원도 같았다. ‘하루라도 빨리 하나님이 나를 부르시는 것. 자식들한테 민폐 그만 끼치는 것.’ 왜 죽고 싶었냐는 손녀의 물음에 "성가싱게"라고 대답한다. 할머니에겐 더 이상 키워줄 손주도, 밥을 차려줄 자식도 없었다. 그런데도 손녀와 함께하니 안색이 밝아진다. 살아갈 이유, 그것이 무엇이든 얼마나 중요한지 스크린 너머로 전해졌다.
제사로 오랜만에 주인공의 집에 모인 가족들. 할머니는 계속 움직인다. 숟가락 하나라도 놓고 싶고, 가스 불도 켜주고 싶다. 어떻게 서든 가족 모임에 안 갈 핑계를 찾고, 가만히 있고 싶어 하는 나와는 대조적이었다. 하지만 어른들이 그녀에게 부탁하는 일은 단 하나였다. “어머니 제발 가만히 좀 계세요.” 할머니의 최선이었다. 주름 사이로 쓴웃음이 스쳐 지나갔다. 식사 후, 어떻게 모실 거냐는 문제가 떠올랐다. 할머니는 ‘수건돌리기’ 게임의 ‘수건’이 됐다.
마음이 약해진 손녀는 나와 비슷한 말을 늘어놓는다. 우리 집에 모시자, 내가 책임질게. 따듯하고 착한 말이다. 직장인이 말하는 ‘책임’에는 실현 가능성도, 지속 가능성도 없다. 손녀가 천사 역할을 맡을 수 있는 건, 그의 어머니가 악역을 자처했기 때문이다. “난 차라리 할머니가 관에 있는 게 마음이 편할 것 같다. 저 시골에 혼자 계신 것보다.” 손녀 혹은 나는 아무 말도 못 한다. 현실을 인정하고, 직접 꺼내기까지 겪은 내적 갈등과 마음고생을 짐작조차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손녀의 입장에 가깝지만, 자꾸만 주인공인 할머니에 나를 투영하게 된다. 대략 70년 뒤의 나는 ‘살아야 할 이유’를 몇 개나 갖고 있을까. 맹목적인 장수는 더는 매력적이지 않았다. 할머니, 할아버지께 연락을 드릴 때마다 쓰는 문장이 있었다. “오래오래 사세요!” 영화를 본 뒤로는 문장을 바꿨다. “건강하고 행복하게 사세요.” 할머니, 할아버지가 죽어야 할 이유보다 살아야 할 이유를 끝까지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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