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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s

7월 3일 도서관에서 양귀자 <모순>

by 하파써블 2024. 7. 3.

#1
요즘은 필요한 말만 하려고 노력 중이다. 특히 회사에서 말이다. 서론은 구태여 필요없다. 오늘 기장님이 견적서를 늦게 주신 이유는 다른 팀 촬영에 갔기에, 오전에 정신이 없어서인데. 대표님한테는 30분안에 전달드리겠다는 말만 했다. 구구절절 이유와 동기가 너무 궁금한 기질을 갖고 있기에, 이런 화법은 보내기 전 검토해야하는 수고로움이 있다.

#2
손기정문화도서관은 2024 상반기 발견하기 가장 잘한 곳 중 하나다. 휴일마다 도서관에 오게 되었다. 독서를 하면 자기계발 유튜버처럼 삶이 풍요로워지거나 그렇진 않다. 그저 2시간 3시간 내내 새로운 세계에 빠져 다른 삶을 살아볼 수 있는 기회랄까. 이게 엄청나게 생산적인 활동인지는 잘 모르겠다. 독서를 하는 이유 중 하나는 쾌락과 유희이기에, 내게 독서는 쇼츠보기와 릴스보기와 비슷하다. 그럼에도 책이 주는 긍정적인 이미지가 있기에, 좀 더 양심 가해가 가지 않는 행위랄까

느지막히 일어나 씻고, 밥을 해먹고, 설거지를 하고, 간단히 해결해야 할 일을 처리하고 (아 이 중 몇건은 해결되지 않았다 젠장!!!!) 아이패드, 키보드를 챙겨 도서관으로 향했다. 노트북까지 가져가지 않았다. 노트북은 무겁고, 너무 본격적으로 독서도 해야되고 일도해야된다는 무의식적인 사명감을 심어준다. 다른 루트로 와서 카페와 편의점이 보이지 않았다. 3800원을 주고 아아를 사먹고 싶진 또 않아서, 조금 더 내려왔는데 주민센터에서 커피를 단돈 2000원에 파는 것을 발견했다. 왕복 교통비 3000원, 커피2000원에 평화와 쾌적함을 누릴 수 있으니. 공공시설은 이렇게 이롭다.

#3
오늘 읽은 책인 양귀자 작가의 <모순>이다. 스테디셀러임에도 이북이 없더라. 대출 예약을 신청한 지 3주 정도만에 받았다. 안진진이라는 여성과 주변 인물을 다룬 이야기였다. 주변 사람들을 진진만의 시선으로 풀어냈다. 참진을 두개나 썼지만 성이 안이라 진을 평생 부정하는 삶이라며 .. 모순이라는 책제목에 가장 어울리는 주인공의 이름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같은 소설은 두번다시 안읽는 편인데, 이 소설은 왜인지 다시 읽어보고 싶다. 폰을 충전기에 꽂아둔채 읽어서, 어디어디가 내 마음을 쿡쿡 찔렀는지 기억이 생생하게 나진 않기 때문이다.

술꾼이었던 아버지의 dna을 이어받은 진진이 술에 처음 취해 장우에게 같은 술주정을 부렸을 때는 소름이 돋았다. 정말 모순적이고 - 폭력은 절대 사랑으로 미화되어서는 안되지만 - 비로소 아버지의 입장이 되어 그를 이해한 진진이 안쓰럽기도 했다. 역시 사람은 직접 겪어봐야만 아는 걸까. 한 사람을 제대로 - 있는 그대로 이해하는 건 넘 어려운 일이다. 사실상 불가능하기도 하고… 많은 면이 아버지와 어머니로 규정된 진진의 모습을 보며, 환경의 힘을 다시금 느끼기도 했다.

주리가 불쌍하기도 했지만, 진진의 이모에게선 20살의 나를 발견했다. 당시 친한 친구는 진진의 어머니같은 삶을 살고 있었다. 가족들의 다이나믹한 상황, 주변 남자들의 구애에 고민하고, 사람이 북적북적해 조용할 새가 없는 삶. 안정적인 집안 한경, 그럭저럭 들어간 대학, 무리없는 인간관계였지만 내 삶은 너무 평온했다. 우린 서로를 부러워했다. 이모의 행복이 엄마의 불행이고, 이모의 행복이 엄마의 시샘의 대상이되었듯. 다양한 선택지를 통해 삶의 부피를 늘리는 진진도 이해되지만, 그저 우물이 평온하고 지금 이 부피에 만족할 수 있다면 구태여 그 행복을 깰 필요가 있나? 라는 생각도 들었다. 너무 염세적인 사회인이 되어버린걸까.

영규가 괘씸했던 건, 진진보단 그만의 인생계획표를 더 사랑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진진이 장우보단 영규를 택하길 바랐다. 장우와의 로맨스도 진진에겐 불행이 되었을거다. 그럴바엔 물질적으로 그나마 나은 영규와의 불행이 나을지도 모른다. 진진의 성격상 결국 영규와 이혼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소설은 혼란의 1998년에 출간되었다. 당시 혼란과 모순으로 가득했던 독자들에겐 더 와닿는 소설이 되었겠지. 일부러 90년대 유행가를 들으며 소설을 곱씹어본다. 양귀자 작가의 재치있지만 날카로운 문장들이 와닿았다. 어쩌면 진진이 나만의 추구미였던걸까? 어제 인사이드아웃2를 봤다. 불안보단 따분이가 내 콘솔을 잡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진진의 감정 컨트롤러는 누가 잡고 있을까.

진진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실존 인물이라면, 신랄하고도 재치있는 문장과 엉뚱한 사고로 에세이 몇권 뚝딱해서 베셀 작가도 되었을텐데. 약간은 염세적이지만 삶의 희망은 또 놓아버리진 않는 모순적인 모습을 두고 오늘날의 우리는 ‘힙하다’고 표현했을 거다. 2020년대를 살고 있다면 진진의 마음을 휘어잡았을 유행가는 뭘까. 궁금하다. 아마… 잔나비나 혁오를 2010년 초반대에 알았을지도, 유명인이 되어서 ‘진진이 듣는 플레이리스트’가 유명해졌을지도.

실제 작가와와 진진과의 모습은 얼마나 닮아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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